보수화 또는 막다른 골목 내가 쓴 것


<세계의 문학> 131호(2009년 봄).

 

 

보수화 또는 막다른 골목

 

 

김정한

 

 

인류에게 보다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듯 보였던 세계화가 마침내 경제위기의 세계화로 귀결했고, 불과 몇 년 안에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공황이 폭발해 현대 문명의 기반을 허물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위험을 앞에 두고 움츠러드는 것이 보수화라면 지금이야말로 세계적인 보수화의 시대를 선언할 적기일 것이다. 어떻게든 붕괴를 막으려는 몸짓은 현상태(status quo)에 대한 변호와 상통하기 쉽다. 그러나 거침없이 선언하기 전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호흡을 가다듬자.

 

막다른 골목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좌파 경제학자들은 작금의 세계 경제위기가 단기적인 경기침체가 아니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미국의 무분별한 비우량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 loan)이 부동산시장의 거품 붕괴로 부실해지고, 그로 인해 투자은행들이 연쇄 파산하고 가계 부채가 증가하는 현상은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는 맑스의 개념이 평균이윤율 저하이다. 사실 자본가들의 오랜 숙원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 없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장에서 노동자들 없이 기계만 갖고 생산품을 만들어내면 불필요한 인건비를 없애고 파업 등 골치 아픈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끊임없이 노동을 절약하는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려는 경향이 생겨나는데, 문제는 이런 개별 자본들 간의 경쟁이 고정자본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이어져 자본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이윤율을 하락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물경제의 이윤율이 하락하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 자본은 금융 산업으로 이동해 생산과정을 매개하지 않는 돈벌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런 자본의 금융화가 기왕의 세계화 흐름과 결합해 전 세계를 가로질러 국경을 넘나들며 금융거래로 양도차익을 수취하는 것이 바로 대략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이다.

최근에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사회악 자체의 표상으로 상징화되면서 일상 어법에서 그 외연과 내포가 불분명해진 면이 없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금융세계화이고, 이 과정에서 금융거래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함과 동시에 각종 금융상품을 새로 개발해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택담보대출업체는 주택저당증권(MBS)이라는 금융상품을 만들어 투자은행에 판매하고, 투자은행은 이를 여러 형태의 부채담보부증권(CDO)으로 만들어 투자를 중개하는 투자신탁기금에 팔고, 이 고수익·고위험 상품이 부도날 때를 대비해 신용부도스왑(CDS)을 만들어 보험회사에 판매하고 보험료를 지불하는 등, 다양한 파생금융상품들을 매개로 얽히고설킨 세계적인 금융네트워크가 연쇄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벤 버냉키가 1930년대 대공황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공황 전문가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의 위기 대응술은 “필요하다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디플레이션을 막아야 한다”라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국가가 금융구제프로그램을 마련해 금융권의 부채를 인수하고 막대한 구제자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강력한 국가 개입을 요청한다는 점에서는 케인스주의와 닮았지만, 프리드먼 류의 통화주의에 기초해 금융자본을 재생시키려 한다는 점에서는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주장한 케인스와 정반대이다. 이런 정책 방향은, 아무 생산도 하지 않고 이익만 취하려는 인간의 탐욕(greed)이 위기를 불러왔다는 도덕 자본주의론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것이지만, 실물경제의 이윤율 저하라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처방이 없기 때문에 얼마간 경기를 되살릴 수는 있어도 과연 예상되는 대공황을 저지할 수 있을지 많은 회의를 낳고 있다. 더구나 그가 뿌린 돈은 이미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는 중이다.

금융자본의 부실화를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막아보려는 이명박 정권도 큰 틀에서는 미국과 유사하다. 단지 버냉키가 뿌리는 돈이 유럽연합이나 동아시아에서 반강제로 끌어오는 것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전적으로 국민의 세금에 의존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더구나 기존의 금산분리법을 완화시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통합하겠다는 정책은,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허용해 국민의 세금이 아니라 예금까지 마음껏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만큼 노골적으로 친자본적이다. 이것이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386세대로 상징되는 ‘민주화세력’이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확산시킨 마태 효과(Matthew effect)를 더 강화할 것임은 분명하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더욱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태복음 제13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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